장소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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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성장, 부흥, 쇠퇴 과정은 흡사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전성기를 누리다 나이 듦을 경험하는 것처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도시는 그곳에서 거주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문화가 축적된 초상의 단면이며, 더 나은 공간이 되기 위한 성장의 시간을 품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화가 거듭될수록 도시는 삶의 다양성을 잃고, 추상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어떠한 장소가 기억에서만 존재하게 될 때, 우리는 끊임없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동질화 된 공간을 반복적으로 주조해내는 도시는 장소가 가진 차이를 빠르게 말살시키며, 공간이 우리의 살과 얽히며 친밀한 장소로 변화되는 경험을 단절시킨다. 또한 자본의 회로로 기능하는 도시는 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지대(地代)의 상승과 맞물리도록 변모시켰다. 이제 집은 더이상 우리가 실존적으로 뿌리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투자를 위한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뿌리뽑힘(uprooted)의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일상 속 뿌리뽑힘 상태가 주는 상실감과 애도의 감정을 예술가들의 다양한 태도와 실천을 통해 선보인다. 1. 재개발과 도시재생 등의 이유로 사라진-질 공간을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기록(이재복, 김기성)하고, 2. 개인적 장소경험을 박제, 기억하기 위해 재현(김라연, 윤다혜)하며, 3. 발화를 통해 심상의 지도를 이미지화(금벌레)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또한 4. 추상공간 속에서 주체성 회복을 위한 재현적 실천(고정원, 이선구)과 5. 더 나아가 짓고, 거주하며 주변환경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한 과제(문창환, 홍덕은)로 구성된다.

본 전시를 통해 관람자 개인의 심상 속에 머무르던 장소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도시와 함께 호흡하며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장소 실천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발을 디디며 살고, 무엇을 항해 걸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뿌리내림 할 것인지 다가올 도시를 위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기획 이선희